갈바람의 삶의향기. 隨筆

-능허재 의 봄-

갈바람. 2021. 3. 1. 03:03

  

 

 

-능허재의 봄-

엊그제 까지만 해도 엄동설한 이더니
요 며칠 포근했다고
냉이랑 쪽파 봄동이 파릇하게 자라 올라왔다.
허기사 입춘 우수 다 지나가고,
어느새 낼모레가 개구리도 놀라서 튀어나온다는 경칩,
벌써 3월이다.

겨울이야 가든지 말든지 두더지 땅굴 파듯이
시나브로 하는 능허재 공사가 드디어 내부공사를 거의 끝내고,
지난 초겨울에 저장했던 배추랑 무를 꺼내보니...
제대로 된 저장고가 없어서 대충 보온덮개로 덮어서 저장했더니
몇십 년에 한 번 왔다는 강추위를
못 견디고 모두 썩어버리고,
겨우 치리기 몇 개 건져냈다.

주말에만 찾아오는 위문 공연단인
여동생들 오면
겉절이나 해 달랠요량으로 기다리고 있었더니
삼일절 낀 연휴라고 나들이 를갔는지..
하나도 안 와서 할 수 없이 인터넷 찬스로 레시피를 얻어서
난생처음 겉절이 김치 담그기에 도전을 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해야 될
홀로서기 니까...
몇십 년에 한 번 찾아온 지난겨울 혹한의 추위 때문에
어마 어마하게 비싸다는 야채값 상관없이 못난이 야채지만,
채마 전에서 뽑아 준비를 해놓으니 뿌듯하다. ㅎㅎ
이웃사촌 엉아가 기왕 하는 길에
넉넉하게 하라며 배추 3폭 보태줘서
수돗가 대야에 숭덩숭덩 썰어서 굵은소금 술술 뿌려 두고.
이제 막 새순을 내미는 쪽파 몇 뿌리 캐서 다듬어 놓고,
지난해 소래포구에서 생새우 사서 담근 새우젓 이랑 액젓 꺼내고
마늘 생강 한주먹 절구에 으깨고,
찹쌀가루 풀 쑤어 냉수에 담가 식힌다.

참깨 6kg 한말 주문했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참깨는 패스하고,
뉴슈가랑 액젓이랑 매실액 쪼끔 넣고...
좌우지간 한통 그득하게 담아두고,
무 몇 개 깍둑 깍뚝 썰어서
깍두기도 한통 담갔다니까...
이만하면 마님 없이 홀로서기
되능거 아님?
ㅋ ㅋ
나이 지긋하여하는 짓이
조금은 처량할 수 있지만,
그래도 스스로 장하다
여기고 다독이며 황혼의 날들을
적응해 가는 나 ,
쬐끔 모자라다고?
그러거나 저러거나.
회색빛 들녘에도 봄빛은 찾아든다.

2021. 3.1. 능허재에서.
-지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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