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허 재(모든 것이 허락되는곳) 를 만들겁니다.
쪽문을 떼어내고
안방과 대청마루 사이에 있던 벽을 털어내고 있어요.
뒷뜰로 나있던 작은창을 떼고
커다란 창호지 빗살문 분합문으로
뒷산까지 훤히 보이는
테라스도 만들려구요.
공사기한도 없으니...
몇년이 걸릴지 나도 모르겠지만,
홀로 천천히 걸으며
생각하고 즐긴다고 생각하며
지금을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습니다.
사노라면 완공하는 날도 오겠죠?
코로나19가 아직도
활동을 하는데요 자제하게 하는
어수선한 시기에
홀로 피접온 기분이네요
산막이 길 근처의 이곳은
5월도 중순을 넘어선 따사로운
늦은봄 인데 깊은 산촌이라
아침 저녁엔 아직 추워요.
-지권영-
-能許在 의 삽작-
能許在 를 지을 겁니다.
고향집 채마전에 터를 잡고,
성 문 처럼 버티고 선 대문이 있는 행랑채는 헐어버리려구요
울타리나 대문은 만들지 않을겁니다.
그냥 ... 조그맣게 아담한 집을 지어서
길가는 나그네나 고향이 그리운 벗 이나
나이 들어 할일없는 벗들이 쉽게 찾아올수있는 쉼터를 만들어 보려구요.
평생 집짓는 일만 하던 내가 제일 잘 할수있는 것도 집짓는 일이고,
제일 좋아하는 일도 그 일이니 은퇴하여 그거나 하려구요
시작은 이제 곧 준비 되는대로 할거지만 준공 날짜는 없습니다.
통 밀 맷돌에 타개서 누룩 띄우고 고두밥 쪄서 술 빚고,
향기좋은 술 익히는 작은 방 하나 주방뒤에 만들고,
현관앞 테라스를 볕 잘드는 유리로 씌워서
맑은날 밤은 하늘에 쏟아지는 별빛 이 보이고
비오는 날엔 머리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도 들을겁니다.
주방은 거실 뒷쪽에 씽크대 대신 길다란 옹기 요 처럼,
벽난로겸 장작 넣는 아궁이를 만들겁니다.
그 요 위에 구들장 몇개 얹어서 지짐이 판 이나 요리대로 쓸거구요.
좋은 술 익는날엔 벗 들을 초대해서
오리랑 토종닭 몇마리 키우고 염소랑 똥개 두어마리 키워서
술안주 삶아내고 술기운 거나하게 올라오는 밤엔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이야기와 이니스프리스 섬의 꿈을 이야기 할겁니다.
내고향엔 싸리문은 없었어요.
싸리문 대신 삽작과 울타리의 우리들의 추억이 있습니다.
[ 묵글씨를 늦은 오후가 되도록 쳐다보다가
고샅을 돌고 돌아 찾아온 우리집!
글씨를 모르시는 내 아버지는 엉성한 나무 기둥에 엉성한 싸리 묶음.
묵글씨를 붙여놓을 자리도 만들지 않으셨고
거기 어디를 살펴 보더라도 문패조차 올릴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내 아버지의 이름 석자는 각인되지 못한 채
우우우 너무나 추운 그 해 겨울.
문밖에서 떨고있는 12살배기에겐 몹시도 낭패스러운 일이라,
쌓인 눈더미 발로 툭툭 차며 내 아버지의 무능에 대하여,
눈물 한 방울 뚜욱 떨어지려고 할 때,
우리집 싸리문 사이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노란 생명이 보였다. ]
-김문기의 입춘대길 중 에서-
황갈색 밤나무 가지를 촘촘하게 엮어서 굵은 나무기둥에 묶어놓은 삽작은
언제나 반쯤은 열어둔채 한번도 닫혀 본적도 없는듯
사시사철 그대로 정지되어 비바람 몰아치는 여름이 가고나면,
점 점 짙은 회색빛 마른 나무가지 무더기처럼 변색되어
금방이라도 사그라질듯이 땅바닥에 주저 앉을 것이다.
가을걷이가 끝이나는 11월 말 경 이면 갈색 가랑잎 말라붙은 무성한 밤나무가지들이
마당가에 날마다 작은 산처럼 쌓여가고, 굵은 아랫쪽을 창끝처럼 뾰족하게 다듬어
이웃집과 경계선을 따라 구불구불 흙바닭에 꼽혀진 밤나무가지 울타리를 따라 가면
복숭아 나무 살구나무 무궁화 대추나무 등이 가끔씩 서 있어서 울타리가 넘어지지 않도록
기둥처럼 버티고 초겨울엔 뾰족한 가지끝이 하늘을 찌를듯이 솟아있다.
그 위 를 점려하는 주인도 계절을 따라 바뀌어
봄엔 파릇파릇 올라오는 인동넝쿨 잎새와
그 꽃을 찾아드는 벌과 나비들이 한가로이 날아들고,
울타리콩, 더덕이랑, 박, 호박, 넝쿨등이 앞을 다투어 푸른잎으로 울타리를 점령한다.
라릴락 피고지는 초여름이면 추녀끝에 둥지를 튼 제비떼가 벌레를 물고 날아와 쉬어가고,
장마철 호박 넝쿨 사이로 노랗게 핀 호박꽃엔
시커먼 호박벌들이 욍욍대며 머리를 거꾸로 쳐박고 꿀을 빨아낸다.
잠마가 끝나고 파아란 가을 하늘이 높아질때면
붉은 고추잠자리가 도레미파 솔라시도 높고 낮은
울타리 가지를 따라서 날개를 실바람에 깃털 움직이는듯 살랑대고
찬바람에 밤이지난 새벽부터 피워낸 서리꽃이 백색의 향연을 만들어 놓고,
아침에 솟아오르는 햇살이 모두 지워 버린다.
앞집 뒷마당이 보이지 않도록 무성하던 울타리의 잔가지들이 여름내 점점 사그라져
흙에 박힌 울타리 뿌리 사이로 닭 고양이 강아지도 넘나들 만큼의 공간이 생겨나고
밤새워 내린 함박눈이 뾰족한 울타리 가지끝을
솜방망이 처럼 뭉툭하게 매달려서 그 무게를 견디기 어려울만큼 하얗게 쌓여질 때 면,
마당가 북데기틈에 떨어진 나락을 찾는 참새의 무리가 시끄럽게 짹짹거리는 아침을 맞이하곤 했다.
-지권영-
2015.02.19 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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