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아 너는 어이...-
세밑에 어머님을 모시러 고향으로 내려가던날 성묘를 끝내고 동생 내외가 챙겨주는 제사에쓸 잡곡(雜穀)이랑 산나물등
집에서 갈아만든 두부등을 챙기고 방앗간에서 가래떡 까지 뽑아 차에실은뒤 숙부님께 인사를 드리러 작은집엘 올라갔더니
청주에사는 당질녀(堂姪女)가 방학이라 다니러 와서 방에서 나와 인사를하며 할아버지 할머니 두분다 노인정에 계신다고 한다.
차를 마을회관과 노인정을 겸해서 쓰고있는 공회당(公會堂) 앞에세우고 노인정 문을 열고 들어섰다.
온마을 노인들께서 모두 모여계신 자리이라서 어차피 설을 서울에서 쇠는 관계로 세배드리러 따로이 내려오지도 못하는데
이참에 세배(歲拜)드린다며 주욱 돌아가며 큰절을 올리는데, 맨끝자리에 종수 형님이 앉아 계시길래
"형님은 왜 여기와서 앉아계슈?/ 하니까 종수형님이 민망한 얼굴로 씁쓸하게 껄껄 웃으면서 " 으~응 동상! 나두 노인정에
가입을 했어.../하긴~~ 형님 나이가 나보다 열한살 위 이니까 오실때도 되었네요"/
하며 노인이 되어가는 상징인 작은검버섯이 듬성듬성 돋아나있는 종수형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퓨휴~ 작은 한숨한개를
뱉어내며. 년배(歲拜)로는 나보다는 한참위의 형님이지만 또래가 많지않은 형님은 항상 우리랑 같이어울려 놀곤했다.
선후배간에 축구시합을 할떄나 동네 청년들의 행사가 있을때마다 우리랑 한편을 하곤하던 형님이 벌써 노인정이라니...
새삼 내자신이 부쩍 늙어버린 것같은 착각에 사로잡혀 만감(萬感)이교차를 했다.
군대(軍隊) 제대하고 몇마지기 되지도 않는 땅뙤기에 매달릴수도 없던 종수형은 농사는 그의아내와 어머니께 맡겨두고
동두천에 있는 미군부대에서 무장(武裝)경계를서는 경비로 취직을했는데 일주일쉬고 일주일일하는 격주제 근무라서
쉬는주에는 집에서 농삿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고향 마을과 동두천 부대를 수백리나 오고가는 고달픈 생활을 하며
아들딸 오남매를 키워 출가시키고 정년퇴직을 하던 육십살까지 미군부대를 다녔다.
한해에 십수번식 고향을 오가야 하는 나와는 가끔 시외버스 에서도 만나기도 했다.그 고달픈 생활 속에서도 종수형의 얼굴에는
언제나 웃음이 떠나지 않는 밝은 모습 이었는데, 어릴때부터 내게있어서 종수형의 모습은 큰 형의 모습이었다.
그때가 내나이 예닐곱이나 되던때 인가보다....
여름이면 신작로가 있는 방고배기 둠벙에서 발가벗은채 하루종일 담방구질을 하며 입술이 새파랗게 될때까지 놀곤 했었다.
너무오래 물속에서 놀다보면 추워서 이빨이 딱딱 부디치며 떨리고 추우면 발가벗은채 물가에나와 보리짚을 쌓아놓은
보리짚 더미위에 올라가 놀다가 보면 하루해가 저물곤 했었다.
워낙에 깊은 산골이라서 벌목장(伐木場) 통나무를 실어나르는 맹꽁이트럭(크랭크형 쇠막대로 돌려줘야 시동이 걸리는 자동차)
이 통나무를 가득싣고 하루에 한두번씩 흙먼지를 뽀얗게 일구며 엉금엉금 무당벌레가 기어가듯이 지나가곤했다.
운전석뒤에 굵은 연통에서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가릉가릉 기어온 맹꽁이차는 방고배기 개울을 건너 비탈길을 올라가려면
비실비실 힘에겨워 올라가다가 도저히 못올라가서 스르르 뒤로 미끄러져 내려오고 또다시 시커먼 연기를 부릉부릉 내뿜은뒤에
죽을힘을다해 기어 올라가곤 했는데 이때를 기다리던 우리 꼬맹이들은 일제히 달려가 맹꽁이차 뒤꽁무니에 매달린다.
비탈길을 다올라가면 평지부터는 속도를내어 달려가기 때문에 평지에 올라서면 뛰어내려 조수아저씨가 내리기전에 도망을간다.
하루 놀이중에 맹꽁이차를 매달리는 그시간이 가장 재미있는 놀이였고 맹꽁이차에 못매달리면 배짱없는 놈이라고
놀림을 당하기 때문에 한놈도 빠지는 일이없고 모두가 우루루 몰려가 삐죽 삐죽 트럭뒤로 나온 통나무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날도 해거름까지 방고배기 둠벙에서 맹꽁이차를 기다리는데 해가 실풋하게 서산에 걸쳐질 무렵에서야 차가 나타났다.
모두가 달려가 맹꽁이차 뒤꽁무니에 매달려 비탈길을 올라가고 있는데 역시나 중간에서 또차가 멈추어 섰다.
이때엔 모두 도망을 가야한다. 차가뒤로 미끄러지기 시작하고 미끄러질때는위험하기 때문에 모두가 멀찌감치 도망을가서
지켜보고 있는데, 앞집 종철이 녀석은 아직도 용기있는척 나보라는듯이 매달린채 우리들을 돌아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돌멩이를 넘어가던 차가 덜컹하고 흔들리며 종철이는 손을놓치고 떨어지고 뒤로 미끄러지는 맹꽁이차는 가속도가 붙어
종철이를 깔아뭉개고 비탈길 반대편에 와서야 멈추어서고 비탈길에 널브러진 고깃덩이에 모두가 넋을 잃고있었다.
석양이 붉게 방고배기 둠벙위에 물들던 시간 맹꽁이차 운전수나 조수 어린 우리들 까지 방금 눈앞에서 일어난 너무도 끔찍한
사건을 꿈속인양 멍~해 있는데 자전거로 읍내 학교에서 돌아오던 종수형과 동안이형 둘이서 널브러진 고깃덩이를 들어냈다.
지금도 눈에 선한 그때그사건에 몸을 부르르 떤다.
그렇게도 종수형은 우리에게 커다란 존재였는데... 종수형이 벌써 노인정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니...
서울 올라와 명절을 보내는 며칠내내 종수형의 얼굴이 교차되며 내자신이 부쩍 늙어 버린듯한 착각에 빠져 안그래도
나이한살 더먹어야 하는 서러운 설이 반갑지만도 않은 날들 오늘도 허전한 맘은 산을향해 나를 떠나게한다.
모두가 명절이라고 즐겁기만 한데 왜그리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한지.... 이것도 나이들어 그러한가?
에이~~ 호랑이도 때려잡을것 같던 종수형은 왜 벌써부터 노인정에 쭈그리고 앉아가지구 내맘까지 서럽게 하는지 몰러....
-지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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