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부억
-불의 여인(女人)-
내방 남쪽으로 난 들창 창호지에 겨울아침 눈이부시도록 아름다운 금빛노을색이 노랗게 물든 창살의 그림자가
책상 모퉁이를 지나 방 한운데까지 점점 길게늘어져 가는모습을 이불속에 엎드려 고개만 빼꼼히 내놓은채
아까부터 지켜다보며 아버지께서 새벽소죽을 끓이셔서 따근하게 달아오는 구들장의 온기가 언제나 쓰린듯한
나의 위(胃)와 내장(內臟)을 따끈하게 데워주었으면 하는바램으로 뱃가죽이 뜨거워질때까지 꼼짝않고 엎드려 있었다.
방바닥은 펄펄끓어도 임깁이 나올정도의 웃풍은 언제나 겨울철 행동(行動)을 굼뜨게 만들어놓아 따끈한 아랫목을
찾게되고 바깥마당가 울타리가지를 흔들며 지나는 심술궂은 겨울바람이 눈가루를
흩날리고 있는 이른새벽 부터 아버지방인 사랑아랫방 과 내방인 사랑윗방의 사잇문인 장지문(障子門) 사이로 들려오는
새벽마실오신 천구아버지와 아버지의 이야기소리에 깜박깜박 나른한 아침잠에 빠져들며 듣고있었다.
천구아버지는 소싯(少時)적에 살던집에 불이나서 불끄러 들어갔다가 얼굴전체에 화상(火傷)을 입어 피부가 벗겨지고
밀가루 반죽을 사방으로 짖이겨 놓은듯이 얼굴이 하회(河回)탈처럼 일그러져 있어서 처음보는 사람들은 진저리를
치도록 흉하게 생겨있지만 마음은 비단(緋緞)결처럼 곱디고운 이웃아저씨 이다.
성격을 불같이 뜨겁고 급해서 그의 부인이신 천구어머니를 두들겨팰때면 신작로까지 끌고나와 북어패듯이 팬다.
우리가 어릴때부터 천구아버지의 부인때리는모습은 종종볼수있는 구경거리인데 희한하게도 동네사람들 아무도
말리는 이가 없고 모두가 구경만하는데 우리가 그 이유(理由)를 알게 된것도 세월이많이 지난뒤에 였다.
천구어머니의 못말리는 화냥끼가 천구아버지의 매타작을 부르곤하는데, 워낙천성(天性)이 착한분이라
평생(平生)을 그속을썩이며 문드러지고 질투(嫉妬)의 불길이 뜨거워도 당신의 몰골을 비관하며 평생을 살다가셨다.
동네 어른들의 숙덕이는 소리를 엿들어 알게된 진상(眞相)은 천구엄마는 새색씨적부터 워낙 화냥끼가 많아서 동네머슴이고
길가는 장사치고 그녀의 유혹(誘惑)을 피해가는 남자는 없다는 것이고 천구아버지는 더러는 모르는척 알고도 속고 살아가지만,
그도 보통의 남자인지라 확실하게 꼬리가 잡힐적 마다 그의분노(憤怒)는 매타작으로 표출(表出)되곤 한다는것이다.
하여간 어린우리가 어른들의 세계(世界)를 알수없지만 어두운 밤길에 천구엄마 총총걸음으로 사라지는모습 발견하는건 흔한일이었다.
그렇게 상심(傷心)의 세월로 평생을 살았어도 평소의 두내외의 금술은 매우좋앗는데 8남매를 슬하에두고 사셨어도
아이하나 낳을적 마다 동네 어른들은 누구 자식(子息)인지 모른다고 숙떡대곤 했지만,
85년 내가 해외(海外)에서 돌아와 고향에 가보니 칠십이 다되어 아저씨가 돌아가시고, 천구어머니는 이제서야 해방이되어
어떤 땅꾼과 눈이맞아서 고향을 떠났는데, 그의 자식들이 수소문(搜所聞)해 찾았는데 먼곳에서 살고있단다.
천구가 성년(成年)이되어 이웃 처녀 점순이와 사랑을하게 되었는데, 그들의 연애가 소문이나고 드디어 그들의 연애사실이
점순이 아버지귀에 들어가던날 점순이 머리채를 움켜잡은 아버지가 천구네 집싸리문 앞에까지 끌고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내딸년 죽어서 앞개울가에 묻을망정 이런집에 시집보내진 않을거라며 대성통곡(大聲痛哭)을 하는걸 보면
그시절 한집안의 가풍(家風)이나 부모의 행실(行實)이 자식들의 앞날에 끼칠수있는 영향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것이다.
끝내 점순이는 그의 집안 어른들의 007작전(作戰)으로 동네사람들은 아무도 모르는 경상도 어디로 멀리 시집을갔다.
얼마전 고향의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옆집 천구의 큰형님이 화상을입어 강남 에 있는 화상전문 병원에 입원을했으니
한번 문병을가라고 하기에 들렸더니 천구큰형님은 혼수상태(昏睡狀態)이고 형수가 전하는 이야기로는 시골집에서
손주의 종이 기저귀 를 소각하려고 깡통에 구멍을내고 쓰레기랑 같이넣어 태우는데 워낙 물기가많은 기저귀가 타질않더란다.
연기(煙氣)만나고 타지않는 급한 마음에 경유(輕油)통을 가져다 조금 붓는다는것이...
휘발류 통을 가져다붓는 바람에 기름통을든 자신에게 옴겨붙어 저렇게 화상을 입었다고 꺼이꺼이 흐느끼고있었다.
첫추위가 을씨년하게 옷깃을 스쳐가던 며칠뒤 고향에서 부고(訃告)가왔다.
동구밖 느티나무에 서리꽃이 하얗게 매달리던 싸늘한 고향마을에는 상갓집을 알리는 모닥불 연기가 하얗게 올라오고 있었다.
상가(喪家) 대문밖에 개다리 소반(小盤)위의 운동화 한켤레 와 대접에든 생 쌀 한줌이 떠난이의 쓸쓸함을 알리고
천구큰형님은 화마(火魔)의 제물(祭物)로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마당가에 쪼그리고 앉아 멍 한 시선으로 먼산을 바라보는 천구엄마
늙고 벙들어 뒤늦게 큰아들의 집에서 며느리에게 눈치 꾸러기로 얹혀살던 천구엄마는 대를이은 화마의 불행(不幸)이 어쩌면
자신(自身)의 전생(前生)의 업(業) 일것이라 생각하며 줄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지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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