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바람의 삶의향기. 隨筆

-古鄕 의 강-

갈바람. 2016. 3. 9. 12:23

 

 

 

 

 

 

-古鄕 의 강-

남한강! 상류(上流) 깍아 지른 듯한 산 골짜기 사이로

검푸르게 도도히 흘러 가는 내 고향 앞 강줄기엔
대처(大處)에 봄소식이 완연한 사월이 다 지나 가도록 된서리가 내리고

하얀 얼음이 군데군데 가장자리를 따라 남아 있다.
말라 누워 쓰러진 갈대 사이로 버들강아지가 하얀 움을 틔우면

비탈진 산골 밭 다랭이엔 검붉은 흙 언 땅을 힘겹게 밀고 올라 온

청보리싹이 애잔하게 서릿발을 견디어 내고,

냉이 캐는 아낙네의 손 끝에서 봄의 향기가 묻어 날게다.

아무리 막아도 막아도 흘러 가는게 江 이요,

퍼 내도 퍼 내도 결코 줄어들지 않는 고향의 강은

산비탈 뙤기밭을 일구면서도 수만년을 흘러 내리며

잡초(雜草)같은 민초들이 자식을 낳아 기르고,

희망을 이어가는 민초들의 젖줄이요 생명의 원천이다.
칠년 가뭄에 삼천리 반도가 물이 말라 물꼬 싸움에 농부들 등이 휠 적에도

속리산 자락 백두대간 깊은 산 에서 발원(發源)한
내 고향의 강은 칠백리 물길을 따라 한강으로 흐르고

절대 말라 본적이 없는 영원(永遠)한 우리들의 젖줄로 흘러 내린다.

한겨울 푸르도록 시린 꽁꽁 언 강물 위로

돌맹이를 집어 던지면 방찻뚝 넓적 바위처럼 끄떡 않고

돌맹이를 튕겨 올리는 두꺼운 얼음 아래는

새끼손가락보다 더 작은 하얀 빙어(氷漁)들이

배때기에 알을 가득 담고 봄을 기다린다.
사월(四月)이면 빙어는 개천을 거슬러 오를게다.

맑디 맑은 바위 아래 하얀 알을 깔려 놓고

지쳐 버린 빙어는 실개천 바닥이 하얗토록 죽어 널부러지고,

그 실개천 위로 여름이 오면 부화(孵化)된 빙어 새끼들이 강으로 내려 갈게다.

고향(古鄕)을 떠나 온지 삼 십수년이 흘렀건만

지금도 가만히 눈을 감으면 고향의 강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겨울 지나고 봄이 올 무렵이면 서럽도록 눈 시리고

투명 하도록 맑은 강물에 반짝거리는 여울목엔

가슴 시린 목마름이 걸려 있다.
기러기 떼지어 북녘으로 날아 가고 난 뒤

강가 버들숲에 서리서리 맻힌 그리운 지난날의 이야기들이

봄눈처럼 녹아 내리고 황혼녁 강가를 서성거리는

나그네의 낯선 발걸음이 머뭇 거리는 날에도 내고향의 강은 묵묵히 흘러갈 게다.

옛날 나루터 뱃사공 염서방이

강을 건너는 행인(行人)들을 실어 나르던

중리 나루터엔 튼튼한 시멘트 다리가 생겨나

자동차가 씽씽 다리위를 달려 가도

지금도 강물은 변함없이 물살에 반짝이는 햇살을 튕겨 내며

 물보라를 일으키고 여울목을 지나 흘러 간다.
“작은 배 출발하려 할 때 저녁 밀물 재촉하니/…

 / 언덕의 행인들 언제나 다할까/

 앞사람 미처 건너지 못하였는데
뒷사람 오나니.”

 /고려 말 문인 백원항(白元恒)이 쓴 ‘조강’이란 시가 한편 전한다.

정든님이 애써 눈물을 감추며 나룻배에 몸을 싣고 떠나시던날!

 처연(悽然) 하리만치 슬프디 슬픈 흐느낌으로

가녀린 어깨를 들먹이던 여인의 머리 위로 강바람이 소리를 질러 대던...

눈 감으면 아스라히 떠오르는 그리운 내고향 의 강....
쇠똥도 덜 떨어진 까까머리 시절엔

여울목에 돌멩이 쌓아 막아서 싸리나무 통발 걸고 피래미 잡으며
바지 가랭이 젖어 드는 이른 봄바람 한기에 온몸을 부르르 떨며

버들가지 꺽어 들고 버들피리 불던 그 봄날은 언제이던가?

강가 빨래터에서 방망이 힘차게 두드리는 소리와...

까르르 웃음 지며 해 저무는 줄도 모르고 재잘대던 큰애기들
지금은 간 곳 없고, 통발에 피래미 잡던 까까머리 철부지들도

간 곳이 없는 강 에는 여름이면 몰려 드는 피서객(避暑客)들로 인해
바위틈 자갈밭 은모래 뱃사장 할 것 없이 비닐봉지 날아 다니고

페트병 유리병이 굴러 다니는 황폐(荒廢>)한 강이 되어 있다.
우리가 가꾸고 보존 해야 할 천혜의 아름다운 산천이

지금은  더럽혀져 서러운 강이 울고 있고 몸살을 앓고 있다.

내 어머니의 젖내음이 나는 가슴 같은 내고향의 강!

내누이의 빨래터 창포에 흑단 같은 머리를 감던 밤이면
솜방망이에 횃불 밝혀 가재랑 올갱이 줍고 밤

고기잡이 하던 강가에 은모래 달빛에 반짝이는 백사장도

밤 새워 불러 주던 갈대숲의 사삭거리는 강바람의 노래 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 오고,

이맘때 쯤이면 봄에 북녘으로 떠나야 할 길손인
기러기떼 청둥 오리떼가 먼 길 떠날 채비를 하느라

연일 강과의 이별이 서럽다고 끼약! 끼약! 울며 불며 부산할게다.

그 누가 돌려줄텐가? 그리운 내고향의 옛강을....

-지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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