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바람의 렌즈로본세상

-문명의 박물관 이스탄불-

갈바람. 2013. 11. 17. 22:57

 

 

 

 

 

 

 

 

 

-문명의 박물관 이스탄불-

 

 

 

 

10월31일 쉬린재마을 관광을끝으로 셀축에서 리무진 버스를타고 1시간을달려 쿠사다시로 와서

서메리 에페스 호텔(SURMELI EFES HOTEL )발코니 에서 쿠사다시 야경을 바라보며,

윤우가 송과장을 통해 호텔방에 넣어 주었던 와인한병을 따놓고,

어둑어둑해지는 에게해와 이국땅의 외로움을 달래고 있었다.

 

 

31일 아침 7시 이즈미르 공항에서

터키항공을 타고 1시간... 

에게해권을 벗어나 인류문명의 박물관이라 일컷는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11월1일   이스탄불...

 

 

영화같은 도시 ...

007 영화나 기타 영화에 자주등장하는 로멘틱 하며 엔틱한 도시 ...

이곳은 이번이 3번째이다.

한번은 1983년 업무차 왔었는데,하룻밤 자고 돌아갔고,

두번째는 1박2일 성 소피아 성당이랑 돌마바흐체 궁전이랑 몇군데 관광 했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알고가자고 작정을 하고 떠나온 여행이다.

 

 

 

 

 

이스탄불은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인들이 식민지 로 건설하였으며

당시 이름은 비잔티움 이었다.

33년에 콘스탄티노플 로 이름이 바뀌면서 로마제국 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후 그리스 정교 세계의 중심지이자 비잔틴 문화의 중심지로서 번영 하였고,

동서 문화교류 큰 역할을 하였다..

1930년 터키 공화국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에서 현재 명칭으로 바뀌었다.

 

 

 

 

오랜만에 이스탄불 구시가지 시내에 있는 한국 식당에서 된장찌게 와 낙지볶음으로 점심을 먹고,

금강만에서 출발한 유람선은 마르마라해를 옆에 끼고  보프러스 해협 까지 나아갔다가

다시 돌아오는데 바람이 거세어지고 날씨가 쌀쌀해지니까 모두가 선내로 들어가버린다.

 

 

 

금강만을 지나  마르마라해를 옆에끼고  보프러스 해협까지...

날씨는 금방 이라도 비가 내릴것 처럼 흐리고 바람이 거세었지만

석양무렵 비껴가는 빛살의 무늬처럼 이스탄불의 이국적인 풍광이 

일렁이는 바닷물 물결속으로 ....

내 마음을 천근의 무쇠처럼 가라앉히는 이런 날 에이그~~

곁에는 말동무 할  인간도 하나없네....ㅎㅎㅎ

카메라 가방에서 소주한팩 꺼내어들고 가슴까지 후벼내듯 불어 오는 바람앞에 선다. 

 

 

 

 

 

-성소피아 성당-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웅장하고 높은 천장과 현란한 문양의 모자이크 장식의 아름다움에 입을 다물수가 없다.

성 소피아 성당은 비잔틴시대 건축 예술의 백미라고 일컬어지는데,

주후 537년 유스티니안 황제에 의해 세워졌다.  

또한 초기 그리스도교의 성화(聖畵)와 이슬람의 상징물들이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내부는 길이 81m, 폭 70m 규모에 기둥도 없이 직경 33m의 거대한 원개(圓蓋, 돔 지붕)가 만들어져 있는

학자들 사이에선 이 건물이 세계 7대 불가사의 를 넘어 8번째 불가사이 라고 한다.

성 소피아 성당은 아야 소피아 성당이라고도 불리는데,

성(聖)’은 그리스어로 ‘아기아’이며 터키어로는 ‘아야’로 발음한다

 

 

 

재미있게도 이 유스티니안 황제는 건축 왕이라고 불렸는데 베들레헴의 예수탄생교회,

시내산의 성 캐더린 수도원도 이 황제 때 건축이 되었다.

비잔틴제국(동로마)의 성당양식과 오스만제국의 이슬람양식이 섞여 있는 소피아 성당은

비잔틴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는 건축물로,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는 세계 최대 규모였다.

성 소피아 성당은 이스탄불이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불리고 있을 때인

서기325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도교의 대성당으로 지은 것을,

532년~537년에 걸쳐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에 의해 비잔틴 양식의 대성당이 완공되었다.

 

 

 

 

당시의 유명한 기하학자와 물리학자들이 이 건물을 설계했다는데 5년1개월에 완공을 시켰다니

지금의 건축기술이나 첨단의 장비로도 어렵다는게 건축계의 지론이다.

헌당식에 임한 황제는그 아름다움에 도취되어서 탄성을 지르며

'내가 이제 솔로몬을 이겼소.'라고 고백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 만큼 아름다운 성당이다.

 

이 성당의 본당은 높이가 약55m에 달하며 지름이 약30m에 이르는 둥근 돔으로

지붕이 만들어져 있고 벽면에는 아름다운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이 비잔틴 양식의 건물들은 중앙에 큰 돔을 두고 주변에 크고 작은 돔들어 두어 조화롭게 건축을 했다.

 이 비잔틴 건축 양식들이 이슬람 건축 양식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데

이 소피아 성당이 이후 회교사원의 모델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 소피아 성당은 오스만튀르크 시대에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로 바뀌는 비운의 역사를 겪게 된다.

오스만 제국 시대에 나라를 확장하던 그들은 기독교 성당과 유적을 파괴하였는데

오스만 제국의 메메트 황제2세는 이 소피아 성당 앞에 이르러서는

웅장한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파괴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대신 이 성당을 모스크로 바꾸었는데 지붕 위의 십자가는 이슬람의 초승달 표지로 바꾸었고

메카를 향해 기도할 수 있도록 내부를 바꾸고 기독교 성화 위에 회칠을 하였다.

 

-작업대를 설치하고 지금도 복원작업중-

 

 

 

또 사방에 이슬람을 상징하는 4개의 첨탑을 지었다.

지금은 이 성화를 복원하기 위해 60년 이상 작업을 해오고 있어서 일부를 감상할 수가 있다.

이 복원되고 있는 성화 중에는 특별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벽화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초상이다.

세계적인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A.D. 6세기 초반에 지어진 후 약 1,000년 동안 콘스탄티노풀의 대 성당으로 사용되다가,

15세기 중엽 오스만 제국의 정복으로 약 500년간 이슬람 모스크로 사용되고,

지금 이 성 소피아 성당은 현재는 박물관으로 개관되고 있다.

 

 

 

 

 

-불루모스크-

 

여자는 히잡을 써야하고,

이슬람사원에 기도하러 들어가는 사람들은 사원에 들어가기전에  신발을 벗고 발을 씼는다.

관광객이라 해도 예외는없다.

여자들은 히잡을 착요해야 들어갑니다. 

스카프나 목도리로 머리를 두르셔야 입장을 할수있습니다.

신발은 벗어서 비닐  봉투에 넣어서 들고 양말은 신으셔도 됩니다.

 

 

 

 

 

같이간 팀의 여성한분이 머리에히잡을 쓰라니까 자존심이 상했는지

미적 미적 그냥 밀고 들어가니까

문앞에 지키고선 감시인이 머리를 가리키며 손짖을한다,

그제서야 쟈켓 등뒤에달린 후두를 슬며시 당겨서 뒤집어쓰고 모스크 안으로 들어갔다.

 

 

 

회교사원으로 술탄 마호멧 사원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오스만 제국의 마호멧 1세가 소피아 성당을 모방해서

1616년 경에 지은 이슬람 사원이다.

보통의 모스크 사원이 4개의 첨탑을 가지고 있는데 반해

이 블루 모스크는 6개의 첨탑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중국풍의 청색 타일로 장식되어 [블루 모스크]라 불리게 되었으며 이슬람 사원의 건축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오스만 황제들의 중요한 의전이 집행되었다고 하는데 현재도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피에르로티 언덕에서 바라보는 골든혼의 석양-

 

-피에르로티 언덕 과 골든혼의 석양-

 

 

피에로티 언덕에서 골든혼의 노을을 보지않고는 이스탄불을 논하지말라!

고  누가 말했더라만....

그네들만의 이야기인가? ㅎㅎㅎ

 

글쎄.... 남산에 올라 한강의 석양을 바라봄도 좋지않은가?

아하!  피에로티 같은 작가가 없나보다.  

프랑스 작가, 피에르로티 찻집 (Pierre Loti Kahvesi) 프랑스작가,

피에르로티: 본명은 줄리앙 비오(Julien Viaud) 가 즐겨 찾아 이름붙여진 피에르로티 찻집을 향했다.

 

 

 

날씨가 좋지않아서 골든혼의 석양은 보지못하고  차한잔 마시며

여행의 고단함을 잊고 잠시 여유를 가지는 시간이었다.

야트막한 언덕인데도 관광 명소라서 그런지 케이블카를 설치해 놓아서

모두들 편안하게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다.

 

 

 

 

피에르 로티의 카페 프랑스 해군인 피에르 로티가 유부녀였던

아지야데와 밀회를 즐겼다는 언덕 위 무덤 가에 있는 조그마한 찻집이다.

찻집뿐만 아니라 골든혼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곳이다.

 

 

 

 

 

 

 

 

갈라타 다리

 

이스탄불의 마지막 밤 이스탄불의 야경을 감상하기로 하고

야경투어에 나섯는데 갈라타 다리 아래 식당과 카페가 불야성을 이루고

다리위에 낙시하는 강태공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도없이 늘어서있다.

 

 

 

 

 

전망좋은 카페에 앉아 불르모스크와 선착장 을 바라보며 맥주 한잔 마셔가며

물담배 체험도 해보고,(물항아리를 통해 잘 말린 허브잎를 넣고 담배처럼  피운다.)

 

 

 

 

 

"갈라타다리" 에메노뉴 선착장 초입의 휘황찬란한 불빛들이 장관을 이룬다.

이 갈라타다리는 밤문화가 별로없는 이슬람권 서민들이 차를마시며 ,

야경을 즐기려고 모여드는 소박하고 정겨운 곳이고  관광객들로 북적대는 명소이다.

 

 

 

 

맥주를 마시고 갈라타다리를 건너 그 유명하다는 고등어 케밥을 먹으러 갔는데

고등어를 숱불에 구워서 햄버거처럼 빵속에 넣어 레몬소스를 뿌려서 먹는

이스탄불의 명물인데 다들 맛있다고 잘먹는다.

나는 촌놈이라 약간 비릿한게 별로 더만.....

 

 

 

 

 

히포드롬.

 

성 소피아와 블루 모스크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원래 로마 시대 검투 경기장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4세기 이후에 검투가 금지되고 나서는 마차 경기장으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광장으로 바뀌어 있다.

약10만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이곳은 13세기 초 십자군 전쟁 때 파괴가 되었다.

 

 

 

 

 

오벨리스크.

 

오벨리스크는 태양신 라 에게 좀더 가까이 가고싶은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것이 라고 한다.

이 오벨리스크는 기원전 15세기 이집트의 파라오 투트모스 3세가 태양신에게 받치려고 만든 비문인데

원래는 이집트에서 있었으나 로마 데오도시우스가 전리품으로 지금의 터키로 옮겨놓았다고 한다.

넓은 광장에 비잔틴 제국의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이집트 룩소에서 가져다 놓은 오벨리스크 첨탑이 있다.

 

 

 

 

세계에서 두번째 건설 되었다는 1구간 만 왕복운행 하는

지하철 (지금은 주로 관광객 들이 많이 타는 )을 타고,

탁심광장(서울의 시청앞광장) 을 마지막으로 야경투어를 끝내고

터키여행의 첫날 묵었던 쉐라톤 호텔에 투숙을 했다.

 

 

 

 

 

-탁심광장-

 

 

11월 2일 오늘이 터키일주의 마지막날이다.

 

톱카프궁전

보스프러스 해협의 높고 평평한 곳에 위치해 있는데 넓이가 약70만 평방미터에 이르는 커다란 궁전이다.

이 톱카프 궁전은 1453년 오토만 제국의 술탄인 메흐멧이 이스탄불을 차지하게 되면서 처음 건설되어

그 후 4세기 동안 꾸준히 그 규모를 확장시켜 왔는데,

그 결과 오늘날 이곳은 15~19세기 초까지의 오스만 건축양식의 변화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톱카프 궁전은 원래 오스만 제국 대대로 술탄 군왕들이 거처했던 성으로 한때 이곳에는 술탄과 그 가족 외에도

5만명이 넘는 시중들과 군사, 관료들이 거주했었다고 한다.

예전에 요리를 만들었던 곳은 도자기 박물관이 되어있고 보물고에는 술탄 군왕들이 사용했던

옥좌, 면류관, 무기, 생활용구, 왕비나 여자들이 사용했던 장신구가 전시되어 있으며

터키 각지에서 미녀를 모집했던 할무, 신관(후궁의 시중을 드는 남자)의 방도 보존되어 있어 그 흥미를 더하고 있다.

지금은 거의 모든 건물이 박물관으로 바뀌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돌마바흐체 궁전

 

가득 찬 정원이란 뜻으로 해변을 흙으로 메운 뒤 세워진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50만 금화 즉

현재 돈 5억불에 맞먹는 기금으로 건립된 이 궁은 1856년 완공되었으며

궁의 내부 장식과 방들을 꾸미기 위해 총14톤의 금과 40톤의 은이 사용되었다.

3층의 대층 구조로 지어진 궁의 내부에는 285개의 방과 43개의 홀, 280개의 화병, 156개의 다양한 시계, 4톤과

 

 

 

 

 

 

준공기념으로 영국여왕이 선물했다는 2톤 중량의 중앙 샹들리에 외에  36개의 샹들리에, 58개의 크리스털 촛대,

560점 이상의 그림, 손으로 직접 짠 카펫 등이 전시되어 있다.

오스만 제국의 세력이 급격히 악화되어 가는 시점에서 이를 만회하고자 서구화를 추진하고

국력 쇄신을 도모하던 압두메짓 1세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해 초호화판으로 이 왕궁을 건립하였다.

그러나 결국 막대한 건축비 지출은 어려웠던 왕실 재정을 더욱 악화시켜 오스만 제국의 멸망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았다.

 

 

 

 

 

 

지하 물 저장고

 

이 건물은 주후 532년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대에 건설되었으며

336개의 기둥 중 거의 모두가 비잔틴 코린트식의 기둥을 가지고 있다.

저수지 전체의 크기는 폭 70m, 길이는 140m, 높이가 약8m 정도 된다. 물은 약8만 톤 정도 저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도시민의 식수문제와 궁전의 식수를 해결하기 위해서 약19Km 떨어진 밸그라드 숲에서 끌어온 물을 저장했다고 전한다.

1985년에서 1988년 사이에 이스탄불 시는 이 저수지를 개축하여 새로 단장하였는데

기둥들 사이에는 나무를 재료로 도보를 만들고 조명과 음향효과를 써서 관광객을 위한 장소로 만들었다.

 

 

 

 

 

 

 

석고 위의 수심측정기 눈금이 기둥머리에까지 다다른 것을 보면 당시 이 저수지에 물이 얼마나 가득했었는지를 알 수 있다.

건물은 기둥들로 받쳐져 있는데 고대 그리스 신전에서 가져 온 돌로 만들어졌다.

양 구석의 기둥받침은 메두사의 머리모양을 하고 있다.

원래 이 메두사는 아폴로 신전에 있던 것인데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화하자

이전에 그리스 신전에 사용하던 신상이나 기둥들을 가져다가 물 저장소 건축에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랜드바자르

 

그랜드바자르는 이스탄불 대학 앞에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비잔틴 시대부터 현재 그랜드바자르가 있는 장소는 무역의 중심지였다고 하며         

이후에는 터키가 이스탄불을 장악하게 되면서 1455~1461년에 걸쳐 도시의 경제생활을 부강하게 만들 목적으로

두 개의 메인 아케이드가 만들어졌다.

 

 

 

 

 

이후 사람들은 활발한 상업 활동을 위한 더 많은 장소를 필요로 하였고

그 결과 메인 아케이드의 바깥부분까지 그 영역을 확대시켜 나가서 오스만 시대를 거치면서 지진, 화재 등으로

여러 차례 소실되었다가 몇 번에 걸친 복구 끝에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터키의 민족적 향기가 감도는 이스탄불 최대의 쇼핑 천국으로

세계 각국의 거의 모든 물건들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랜드바자르를 터키어로는 "카팔르 차르쉬"라고 하는데,

지붕이 있는 시장이라는 뜻 그대로 실내에 있는 상점가이다.

4,000여 개 이상의 상점과 67개의 골목길,

출입구만도 20여 개인 시장은 전문 품목별로 나뉘어져 있다.

영화 007 스카이폴의 이스탄불 장면에서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가

그랜드바자르 지붕위를 오토바이로 추격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소희양의 이야기로는 007 정도의 영화가 아니면 아니면 촬영허가를 받을 꿈도 못꾼다고 한다.  

 

 

-군밤장수-

 

그랜드 바자르를 끝으로 터키일주 여행을 끝내고,

공항 나가는 길목에 있는 한국인 식당에서 미역국과 양배추김치 오징어 볶음등으로

(하여간 음식이 성의없고, 맛이 하나도 없었음,) 조금은 이른 저녁을 먹고,

드디어  귀국 비행기를 타기위해 이스탄불 아타튀루크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에필로그"

 

여행이란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사람들의 새로운 삶을

들여다 보고, 그들의 모습에서  

거울에 내모습을 비추어보듯  나 자신을 돌아다보며

더 나은 미래를 설계 하기도하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을 배우게 되는것 같다.

 

또 한번의 여행으로 내마음의 보석 창고에

주옥같은 경험과 더 넓은 견문을 샇아가는 시간이었기를 바래본다.

이번 여행에서   또 한번 느끼게 되는 것이라면,

그들이 가진 찬란한 문화와 역사는 그땅에 살고있는 후손들이 가질수있는

하늘을 찌를듯한 자긍심과 자존심일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우리나라의 5천년 역사와 찬란했던 문화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자존심을 갇는다.

하지만 우물안의 개구리는 되지않으려고 노력을 한다.

 

이탈리아를 여행 하다보면,음악에 무뢰한인 내 눈에도 

음악의 거장들이나 그들의 발자취들을 자주 만나는데,

음악의 스케일이나 창조성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백문이불여일견이다.

 

터키 사람들의 자존심은 그들의 찬란했던 제국의 문화유산과

우리의 잣대로는 결코 잴수없는 화려한 부 의 흔적들에서 나오는게 아닐까....

가난했던 동방의 작은나라 나의 대한민국....

자존심을 일깨운다.

 

나의 기행문이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되는 정보이길 바래본다.

같은 시간 같은 돈을 들여 떠나는 여행이라도

더많은 정보를 알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두배 세배의 즐거움과 보람된 여행을 하리라는건 불을보듯 뻔한 이치일것이다.  

 

 

 

 

-지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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