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의 성 파묵칼레-
파묵깔레 콜로세 데르말 호텔은 호화 온천호텔로 208개의 객실과 22개의 스위트룸및
3개의 장애인 룸을 보유하고있는 5성급호텔로서 실내외 수영장과 온천풀장
터키탕 쟈쿠지시설 진흙목욕 트리트먼트 아로마테라피와 같은 피로회복 시설을
운영하고 있어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기에 적합하다고한다.
야트막한 2층건물로 여러개의 건물을 연결시켜놓은 호텔인데
으리가 안탈리아에서 파묵칼레로 와서 이 호텔에 들어온날이 독립기념일인
10월29일 이라서 정부의 높은 양반들의 축하 행사가 있는지
군악대가 와서 꿍짝거리고 양복쟁이들이 벌떼처럼 몰려와 북새통을 이루었다.
저녁 식사후에 소희양이 추천해준 호텔밖 시내의 양갈비집에 가서 술이나 한잔 할 요량으로
수원에서온 박00씨부부에게 터키에 왔으니까 현지 식당에나가서 자유롭게 맥주한잔 하면서
이국땅의 저녁을 즐겨보자고 꼬득였다.
인솔자로 따라온 송영호 과장을 데리고 산책삼아 약2~3km를 걸어서 유명하다는 양갈비집에 도착했다.
쌉싸름한 현지의 맥주맛도 일품 이었지만 숱불에 구워내온 양갈비도
맛나고 옆자리의 중국에서온 젊은 관광객들이 조금 시끄러운듯 했으나
가지고간 소주를 맥주에 타서 마시는 폭탄주의 맛도 이국적인 밤의 흥취도 무르익었다.
-파묵깔레 목화밭-
파묵깔레는 목화로 유명한 목화재배 지역이다.
가는곳 마다 끝도없이 펼쳐지는 목화밭과 10월말인 지금까지도
목화밭엔 목화따는 여인네들이 목화밭에 가득한걸 보면서
나의 고향은 고추로 유명한 괴산이다. 한여름에 시작해서 땡볕아래 늦은 가을까지
고추를 따던 어머님들이 밤만 되면 허리를 앓던 생각이난다.
-카펫짜는 아낙네들-
땡볕아래 하루종일 구부리고 목화솜을 따 내는일이 보통의 중노동은 아닐것이라 생각했다.
점심을 먹던 시골의 식당앞에서 옷가지 몇개를 걸어놓고 파는곳에
들럿는데 몸뻬바지 비슷한 바지가랭이가 땅에 달을듯이 내려온
바지를 팔고있는데 소희양의 이야기로는 목화따는 바지 랜다.
목화솜을 따서 바지에 집어 넣고 가랭이 사이 가득하면 쏟아내는
그런 형태 즉 바지가랭이에 목화솜 주머니가 달린셈이다.
반면 파묵칼레는 천연 온천장으로 유명한 곳인데
히에라폴리의 깊은 지하 동굴에서 솟아 나오는 온천수가
1,000m가 넘는 언덕의 경사면을 따라 폭포수처럼 흘러내린다.
이 온천수가 흘러내리는 지역을 파묵깔레라 부르며 뜻은 "목화의 성"이라고 한다.
이곳의 온천수는 섭씨 35도의 미지근한 물로 심장병과
소화기 장애 그리고 신경통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로마 황제의 목욕탕도 이곳에 위치했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곳 온천수에는 석회질이 포함되어 있어 온천수가 흘러내리는 동안 석회질이 침전되어
언덕 암벽에 붙어 자연적으로 백색의 석회화가 이루어졌다.
석회 성분이 포함된 이물을 흘려 보내지 않으면 하얀색의 언덕도 검은색으로 퇴색되기 때문에
지금은 인위적인 물길을 만들어 격년제로 이쪽 저쪽 번갈아가며 물을 흘려 보낸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목화솜이 하얗게 피어난 것처럼 보여서 "파묵깔레",
"목화의 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온천수에 족욕을하는 관광객들이 북새통을 이룬다.
우리 일행도 양말을 벗고 발을 담그었는데 온천수라 뜨거울줄 알았는데 그저 미지근한 물 이었다.
-히에라폴리스-
히에라폴리스는 목화의 성 뒷쪽에 있는데,
버가모 왕에 의해서 도시가 세워졌으며 "거룩한 도시"(산자들의 도시)
네크로폴리스는 (죽은자의 도시)라는 뜻이라고 소희양이 설명을 해주었다.
일찍이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하여 쉽게 복음이 전파되었으며 비잔틴 시대에는
주교가 주재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주후 80년경에 사도 빌립이 이곳에서 순교를 당했고
그 곳에 십자가형 구조의 기념교회가 비잔틴 시대에 세워졌다.
-첫사랑을 잃어버린 교회.에페소. -
소아시아의 수도였고 7대 교회 중에 첫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라고 기록되었던
에게해 연안의 터키 땅에는 기원전 8~7세기 무렵부터 그리스 본토에 살고 있던 수많은 그리이스인들이
건너와 폴리스를 건설하기 시작했으며 기원전 1세기부터 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면서 여러 도시가 발달했다.
-니케 여신 부조 (Statue of Nike)승리의 여신 니케의 부조로.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모티브-
도시의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유적지가 바로 에페스다.
에페소는 초대교회 당시 사도 요한이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모시고 와서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리우스(Varius)의 목욕탕-
이곳에 "성모 마리아의 집"이 남아 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에게 요한을 가리켜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 또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가리켜 '보라 네 어머니이다(요 19:26-27절).
'라고 하신 것을 받들어 요한이 마리아를 봉양하며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고 한다.
-오데이온-
오데이온 2세기에 세워진 오데온은 에페소 대극장에 비해서는 규모가 작지만,
1400명을 수용할 수 잇는 건물로 반원형이고 23개의 단이 있다.
도시의 행정관들인 상원의원들의 집회 장소이자 콘서트나 강연 등의 목적으로 사용되었던 소극장이다.
오데이온은 그리스어로 음악당이라는 뜻이다.
사도요한교회는 사도 요한 무덤에 지어진 교회로 알려져 있는데
사도 요한은 예루살렘이 로마 군대에 의해 파괴되기 직전에 에페소로 와서
에베소교회의 초대감독이 되었다고 하며
로마의 도미시안 황제에 의해 밧모섬에 유배되었다가 풀려 나왔다고 한다.
이후에도 수없이 많은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 주후 1
00년경에 에페소에서 평안히 숨을 거두었다고 알려져 있다.
요한의 무덤은 아야술룩 언덕의 중앙 기슭에 있는데 이 무덤위에 교회가 세워졌고
주후 6세기경에 로마의 유스티니안 황제에 의해 웅장한 교회가 세워졌다.
사도요한의 무덤은 교회의 중앙에 위치한 마루 바로 아래 방에 안치되었다고 하며
요한 무덤 근처에 있는 샘물과 무덤에서 나오는 재 같은 먼지에서 치유의 능력이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소아시아 7대 교회 중의 하나인 에페소교회는 이 요한 기념교회로 보는 학설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한다.
-사창가의 광고-
위의 사진은 기원전 1500년전 인류 최초의 상업적 광고라는데...
우선 발 그림은 이 발보다 발이 작은 사람은 올수 없습니다.
발의 방향대로 따라오세요.
그리고 하트 문양 그림위에 동그랗게 그려진 구멍은 돈을 뜻하며
돈을 가지고 오시면 사랑을 해드릴게요.....
그런 뜻 이란다. ㅎㅎㅎㅎ어디까지나 소희양의 해석이니까...
2만5천명을 수용할수 있는 로마시대의 원형극장 그 시절에 2만5천명을 수용할수있는 극장이
있었다는건 그시절 이도시의 인구가 최소한 25만명은 되었으리라는 추산인데
그 규모를 가늠할수 있을것이다.
-히드리아누스 신전-
로마 황제 히드리아누스에게 받쳐진 신전
메두사의 부조로 유명한 황제를 위해 건설된 "히드리아누스 신전" 또한
로마는 목욕탕 때문에 망했다 고 하듯이 그시절의 화려했던 목욕탕과
에페소 도시의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은 뭐니뭐니 해도 셀수수 도서관일게다.
- 셀수수 도서관-
그시절의 도서관은 책을읽거나 열람하는곳이 아니고
문서를 보관하는 성격의 규장각 같은 곳이 었단다.
-아고라-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동서양의 모든 문물이 이곳에서 거래되엇고
터키 최대의 고대도시로 로마시대에는 20만이 거주하던 대도시였으니
아고라는 업종이 다른 가게들이 모여서 발달한 시장의 형태로 서로 필요한 물건을 서고 팔거나 물물교환을 했다고 한다.
에페소의 아고라는 물품이 다양하고 품질이 좋아서 클레오파트라가 그의 애인 안토니우스와 함께
이곳까지 배를 타고 넘어와서 쇼핑을 했다고합니다.
-쉬린제 마을-
쉬린제 마을, 터키 속의 그리스 풍 마을 이다.
1500년 역사를 가진 산악마을인데 본래는기독교가 박해받던 시절
관가의 눈을 피해 산속으로 숨어든 그리스인들이 포도나 과일등 산에서 재배되는
농작물을 재배하여 와인등을 빚어 살다가
1924년 그리스와 자국민의 교환으로 그리스인들이 떠나간 자리에 터키인들이 정착했다고 한다.
와인이 유명한 곳이라 와인 시음을 하러 간다해서 호주여행 을 갔을때
와인농장에서의 각종 와인을 시음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애주가의 마음은 공연히 흥겨웁다.
공짜로 다양한 와인을 맛볼수 있겠구나 했더니 이게 웬말....
시음하고 난뒤 일인당 2유로씩 내는 유료 시음이었던것 이었다.ㅎㅎㅎㅎ
-괴즐레메-
소희양이 강력추천한 터키식 빈대떡 괴즐레메 를 시켜서 맥주랑 먹는데
괴즐레메는 우리나라 가마솥 솥뚜껑 같이생긴 팬에다 밀가루 반죽을 구워낸
음식인데 우리가 어렸을때 어머니께서 칼국수 반줄을 홍두깨로 밀었을때
꼬랑지에서 나오는 국수꼬랑지를 아궁이의 알불에 구운맛 처럼 담백하니 고소했다.
계속...
-지권영- |
'갈바람의 렌즈로본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 마중- (0) | 2018.03.22 |
---|---|
-문명의 박물관 이스탄불- (0) | 2013.11.17 |
-제국의 도시- (0) | 2013.11.14 |
-실크로드의 끝 터키 일주.- (0) | 2013.11.14 |
먼저 주어야만 돌아오는 마음의 메아리 (0) | 2007.09.07 |